배낭여행을 통해 처음 프랑스를 방문했던 약 10여년 전
파리에 머무는 기간 동안 파리의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겠다는 열의에 불타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ㅎㅎ
그리고 정말 겁도 없이 뮤지엄 패스 일주일권을 끊어
파리에 머물던 열흘의 시간 중 일주일을 모두 아낌 없이 박물관과 미술관 관람에 쏟았죠.
그 때 마주한 루브르와 오르세 그리고 퐁피두 모두 너무나 멋졌고 지금까지 좋은 인상으로 남겨져 저의 일터가 되었지만
당시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겨진 곳은 클뤼니 박물관, 그리고 그 곳의 소장품 '여인과 유니콘'이었습니다.

-기존 입구의 모습으로 지금은 공사 중이라 다른 입구를 통해 입장-
한창 수업을 통해 중세사를 공부하며 중세라는 시기에 호기심이 많았던 탓이었는지
고대 로마의 목욕탕과 중세 수도원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공간의 기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작품들이 품고 있는 시간의 매력 때문이었는지.. 그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첫 방문 이후에도 계속 생각이 날만큼 강렬하고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재개장 한 뒤의 클뤼니 박물관의 모습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모든 작품을 볼 수 없기에 입장료 5유로로 할인 중)-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다시 파리에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고,
파리에 머무는 동안 시간이 날 때 마다 한 번씩 방문하는 곳이 되었죠.
하지만 한동안 전체적인 내부 및 외부 공사를 진행하느라 문을 닫아 갈 수 없었고,
다시 문을 연 뒤에도 시간과 체력을 탓하며 가지 못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여인과 유니콘 특별전 포스터(2018년 7월 14일 ~ 2019년 2월 25일)-
그런데 대표 작품인 '여인과 유니콘'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위의 현수막을 보고 마음이 동해 오랜만에 다녀오게 되었죠.
그래서 오늘은 제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클뤼니 박물관의 대표 작품, 여인과 유니콘 잠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유니콘은 유럽 전설 속에 등장하는 동물로 보통 이마에 뿔이 하나 달린 하얀 말의 형태로 묘사되기에 한국과 일본에서는 일각수(一角獸)라 표현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코뿔소가 유럽인들에게 구전으로 전해지며 만들어진 모습일 것이라 추정하며, 여기에 시간이 흐르며 신비한 효능을 갖고 있는 뿔, 최고의 기사와도 겨룰 수 있을 만큼 강한 힘과 용맹함을 갖고 있는 동물, 본성은 사납지만 자신의 새끼에게는 헌신적이며 순결한 여인 앞에서는 온순한 양이 되어버리는 동물 등의 이야기가 더해집니다. 그러다보니 중세 시기에는 유니콘이 용맹과 정절 그리고 순결과 희생을 상징하는 동물이 되어 예수님 또는 성모마리아의 상징으로 사용되며 종교적 의미를 더하게 되죠.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유니콘-
심지어는 그 이미지가 지금껏 활용되며 신비한 동물의 모습으로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이 특별전의 주제가 바로 이렇게 모든 시대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신비로운 유니콘'인 것이죠.

-장 콕토와 그가 유니콘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무대 의상을 입은 배우들-

-현대 작가들을 통해 재해석된 여인과 유니콘-
그래서 공개된 전시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이 유니콘에 영감을 받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답니다.
중세에 만들어진 조각, 필사본, 타피스트리들은 물론이고,
장 콕토가 영감을 받아 만든 무대 의상과 현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먼저 감상해볼 수 있기에
시대를 거치며 유니콘의 역할과 이미지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인과 유니콘" 이라는 점!
잠시 특별 전시 공간을 둘러보고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다잡으며 전시관으로 들어섭니다.

-"여인과 유니콘" 전시관-
그리고 짜란! 사진으로 보다 보니 그 강렬함이 모두 전해지지 않지만 실제로 마주하면 정말 압도되는 공간으로
어둠이 가득한 공간 속 작품이 내뿜는 붉은 색채와 그것을 비추는 조명 빛이 신비로움을 뿜어내는 곳입니다.

-부사크 성-
"여인과 유니콘"이라는 이름의 이 태피스트리들은 클뤼니 박물관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15세기 중엽 르 비지테 가문의 소유로 제작되어 프랑스 중부 부사크 성을 장식했으나
이후 찾는 이가 없어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사라졌다가 1841년 메리메라는 소설가가 다시 발견하고,
이를 보았던 조르주 상드가 1844년 그 아름다움을 극찬하며 세간의 관심을 다시 끌게 된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중요성을 인식한 클뤼니 박물관이 1863년 구매해
지금까지 클뤼니 박물관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중세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품이 되었죠.
총 여섯 점으로 나뉘어 제작된 태피스트리들은
미각, 청각, 시각, 후각, 촉각 등 다섯 개의 감각을 표현한 다섯 점의 작품과
추정 상 사랑과 자유를 의미한하는 마지막 한 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촉각-
그 중 입구 왼편에 걸린 작품 순으로 하나씩 소개해드리면 첫 번째 촉각입니다.
르 비지테 가문의 상징으로 추정되는 사자와 여인의 순수를 상징하는 유니콘이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휘장을 두른 채 중요하고도 고귀해 보이는 여인을 감싸고 있고,
중세 말~ 르네상스 초기를 대표하는 1000개의 꽃(millefleurs, 배경을 꽃과 나무, 식물 줄기로 가득 채우는)기법으로
장식된 배경을 통해 환상적으로 표현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 했나요..)

그리고 혹시나 촉각을 표현했는지 모르고 지나칠까봐 고귀해보이는 여인이 유니콘의 뿔을 살포시 잡고 있죠.
촉각입니다. ㅎㅎ

-미각-
그리고 그 옆은 미각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사실 화려한 장식이 많아 많아 여기 저기 살피다 보면 왜 미각이라 하는가 싶죠.
그래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주인공으로 보이는 여인이 여종이 잡고 있는 그릇에 담긴 사탕을 집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각!
하지만 처음 이 모습을 보았던 때에는 무언가를 잡고 있으니 촉각이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저처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힌트를 하나 더 두었어요.
바로 여인의 발치 아래에 놓인 무언가를 먹고 있는 원숭이! ㅎㅎㅎ
이 모습을 통해 다시 한 번 미각을 표현했음을 알려주고 있답니다.

-후각-
이번 작품에도 그 중요해 보이며 고귀해 보이는 여인이 손에 무언가를 잡고 있죠.
가까이에서 보니 여종이 가져온 꽃입니다.
즉, 꽃의 향기를 맡고 있는 모습이고 이를 통해 후각을 표현했음을 알 수 있죠.
그리고 이렇게 하나씩 힌트를 찾기 위해 뒤에서 보다 점차 가까이 다가가면
울과 실크를 이용해 하나씩 짜며 틀을 다잡은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여인이 입고 있는 의복의 벨벳 그 광택감까지 느껴지고,
장신구와 보석의 그 영롱함과 빛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을 통해 당대 여인의 삶과 함께 의복, 장신구까지 확인할 수 있다니
중세의 풍속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정말 귀한 자료이겠죠?

-청각-
역시나 1000개의 꽃 기법으로 화려함을 뽐내고 있고, 너무나 귀여운 포즈로 앉아 있는 사자와 유니콘
그리고 과실 나무와 각종 동물들을 통해 풍요롭고 화려한 삶을 이어간 고귀한 신분의 여인임일 알려주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저 악기가 놓인 곳에 있는 타피스트리의 무늬는 동방의 무늬,
이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는 것은 이를 소유할 만큼 부유했고, 높은 신분임을 알려주고 있죠.
또한 이번에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바로 청각임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가까이서 한 번 더 확인하니 정말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네요..
심지어 여인의 의복에 드러난 명암의 표현,
빛은 바랬지만 금빛으로 번쩍이는 장식들 모두 너무나 아름답고 화려합니다.
다시 한 번 15세기 중엽의 기술이 이 정도라니 정말 놀랍기도 하고,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어 고맙고, 다행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시각-
그리고 감각을 표현한 마지막 작품, 역시나 바로 알 수 있죠.
여인이 거울을 잡고 있고, 그 거울에 비춘 자신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는 유니콘 덕에 바로 시각을 표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반사되는 형태까지 표현하다니 크..
이런 기법은 나중에 벨라스케스나 플랑드르 회화에서 보는 기법 아닌가요?
그리고 이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이 재치있는 표현으로 시각을 표현한 이 작품이 '여인과 유니콘' 중 가장 유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심쿵.....
유니콘 오른편 하단에 표현된 뿔이 아직 나지 않은 어린 유니콘과 토끼가 서로 마주하며 꽃향을 맡고 있는 모습까지
풍요롭고도 평화로운 여인의 삶을 표현한 듯 합니다.

-사랑과 자유-
이렇게 다섯 개 감각 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 보면 어느덧 마지막 작품앞에 서게 됩니다.
사실 이 작품만 인간의 감각을 표현하지 않아 정확히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기도 하고, 아직까지도 연구가 이어지고 있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현재 추정 상으로는 사랑과 자유를 표현했을 것이라 합니다.
우선 기존에 나오지 않았던 여인 뒤의 텐트, 그 위를 보면 프랑스어로 'A mon seul desir'라고 적혀 있는데
이를 영어로 표현한다면 'to my only desire' 즉, '오직 나의 욕망을 위하여'라고 쓰여 있죠..
그리고 다른 여인들과는 다르게 여인이 시종이 건네주는 보석함에 있는 목걸이를 행복한 표정으로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욕망, 하지만 이 목걸이가 의미하는 바는 물질의 탐욕 보다는
그녀 자신의 의지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섯 번 째, 이 작품은
다른 작품 속 여인들이 하나의 감각을 택하는 대신 다른 것을 포기해야 했기에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반면
이 작품 속 여인은 일시적인 감각 즉, 쾌락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로운 선택 즉, 자유로운 사랑을 택했기에
다른 여인들과 다르게 미소를 짓고 있는 표정으로 기쁜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즉, 인간의 감각, 쾌락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개인의 자유 의지와 그에 따른 선택과 책임도 중요함을
용맹함과 순수, 순결을 의미하는 유니콘을 여인 옆에 그려 놓아 함께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D)
사실 이 여섯 점의 태피스트리에 대한 사료가 많지 않아 추정으로만 남겨져 있지만
이렇게 풀리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어야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그 매력을, 중세의 풀리지 않은 신비로움과 황홀함을
여인과 유니콘을 통해 한 번 느껴보시고 경험해보세요!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특별전은 2월 25일까지이고,
특별전이 끝나도 "여인과 유니콘"은 계속 전시될 예정이니 파리 방문하신다면 꼭~ 한 번 방문해보세요!!
Cluny Museum
(National Museum of the Middle Ages)
28 Rue du Sommerard, 75005 Paris
화요일 휴무 / 9:15 ~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