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르네상스의 한 획을 그은 한 화가의 사망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물론 올해 역시 다빈치의 사망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우르비노 출신의 화가였으며,
동시에 건축가이기도 했던 라파엘로 산치오,
전세계 다수의 미술관에 굵직한 작품들을 남겨 라파엘로 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그 이다.
바로 다음해인 2020년
그가 하늘의 별이 된지 500 주년이 되는 해
그와 발 맞추어 이탈리아 많은 도시에서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준비를 속속들이 해 내가고 있다.
마침, 그가 교황청에 부름을 받고 상당 시간을 보내었던
이곳 로마에서는
Scuderie del Quirinale 에서
르네상스 시대 모든 화가들의 뮤즈였으며,
37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라파엘로가
죽음 직전까지 보냈던 10년의 세월에 초점을 맞춘 전시회를
기획중에 있다.
하지만 로마에는 그곳뿐만 아니라,
르네상스라는 시대의 걸출한 두명의 라이벌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에 굴하지 않았던
3대 거장중 막내인 라파엘로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볼 만한 곳이
널려져 있는데, 오늘은 그곳들의 일부를 소개해보려 한다.
1. 바티칸
그의 삶은 짧았지만, 그 짧은 삶에 비해 미술사에
엄청난 존재로 각인될 작품들을 다수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작품과 명성이 가능했던 것은
율리우스2세, 레오 10세와 같은 당시의 교황들이
그의 엄청난 후견인 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바티칸을 방문하면 그의 작품을 다수 만날 수 있다.

<서명의 방>
바티칸은 라파엘로의 작품을 가장 집약적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라파엘로의 방이라 불리우는 4개의 방
(헬리오도르스의 방, 서명의 방, 보르고 화재의 방, 그리고 콘스탄티누스의 방)
이 모든 공간의 작업은 그와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1524년 마지막으로 완성한 공간이다.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이 공간은 교황궁 2층의 아파트의 일부인데,
델라 로벨라 가문 출신의 율리우스 2세(1503-1513)의 거주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3번째 서명의 방에 한 벽면에 학창시절에 책에서 자주 보았던
아테나 학당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리스도의 변용>
하지만 라파엘로의 호흡은 여기에만 남아 있지 않다.
피나코테카(회화관)에 입장하여 전시관의 정점에 이르게 되면,
성모의 대관식, 폴리뇨의 성모,
마지막으로 그의 유작으로 평가받는 그리스도의 변용과 같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2. 국립 회화관
발걸음을 국립회화관으로 옮겨보자.
바르베리니 가문의 팔라쪼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라파엘로의 뮤즈였던 마르게리타 루티(로마 트라스테베레 지역에 위치한 제빵사의 딸)를
담아낸 초상화 '라 포르나리나'가 전시되어 있다.
국립회화관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도 한 이 작품은
초상화치곤 성적 도발성을 극대화 하여 1519년 라파엘로가 그려냈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의 특이점은 그녀의 팔에 채워진 팔찌에는 라파엘로의 서명이 숨겨져 있다.

<라 포르나리나>
3. 빌라 파르네제
빌라 파르네제에 갈라테라 로지아에는 여러 작가들의 프레스코화가 장식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1514년 라파엘로에 의해 그려진 '요정 갈라테아'는 압권이다.
한 귀족은 그 작품을 보고 라파엘로에게
"어디서 그렇게 아름다운 모델를 구할 수 있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할 정도였다.
더불어 '큐피드와 프시케 이야기(신들의 회의)'
역시도 1518년에 그와 그의 제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요정 갈라테아>
<큐피드와 프시케 이야기>
<신들의 회의>
4. 그 외
그외 라파엘로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으로는
보르게제 미술관,
산타마리아 델라 파체 성당, 산 아고스티노 성당 등이 있다.
우선 보르게제 미술관에는
라파엘로의 작품을 3점 소정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매장(1507),
남자의 초상화(1502),
유니콘을 안은 여인(1506) 등이 존재한다.

<그리스도의 매장>
산 아고스티노 성당 중앙 회랑에 한쪽 기둥에는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 "선지자 이사야"가 그려져 있다.
라파엘로가 이 그림을 그려넣을 때에는
1511~12년 사이 시스틴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선지자 이사야>
산타마리아 델라 파체 성당은
그 회랑이 베드로 성당의 건축 책임자였던 브라만테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그의 사촌동생이었던 라파엘로가 한쪽 벽의 프레스코화를 남겼는데
1514년 시에나의 은행가 아고스티노 키지의 의뢰를 받아 그려졌다.

<선지자 시빌라>
거기에 더해 베드로 성당의 한때 건축 책임가이기도 했던
라파엘로가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에 건설한 키지가문의 소성당은
그의 건축적인 재능을 볼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로마 시내 이곳저곳에 스며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정신은 하늘의 별이 되었으나, 그의 육체 역시도 로마에 영면해 있다.
1520년 그의 죽음이후 지난 5세기동안 그의 천재성은
끊임없는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최후를 만나기 위해
판테온을 찾고 있다.
글과 사진 / 구글 사진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