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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가(2) 앤디워홀 _ 예술의 상업화?!
작성자 고은아 가이드 등록일 2019-02-28
조회수 5,539

학창시절 미술 책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팝 아트의 창시자, 앤디워홀"

똑같은 모습이지만 다른 채색으로 입혀진 마릴린 먼로.

 

주변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인물,

대량생산되는 상품을 단 하나의 예술품으로 시선을 바꿔서 바라본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기존 예술이 갖고있던 이미지,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린 현대 예술의 선구자

"앤디워홀"
 

그를 로마에서 만났다.


<베네치아 광장 뒷편 '리소르지멘토 박물관'>
 

앤디 워홀(영어: Andy Warhol, 1928년 8월 6일 - 1987년 2월 22일)은 미국의 미술가이자, 출력물 제작자, 그리고 영화 제작자이며,
시각주의 예술 운동의 선구자로, 팝 아트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28년  슬로바키아(당시는 체코) 이민 가정으로 육체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1942년 앤디가 14세 때 사망하였고, 그 후 어머니 줄리아가 혼자 아들들을 키운다. 앤디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역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카네기 공과 대학(현재 카네기멜론 대학교)에서 상업 예술을 전공한다. 1949년 졸업을 하면서 뉴욕 시로 이주하여 잡지 삽화와 광고 제작으로 명성을 쌓았다.

대학 졸업 후 뉴욕으로 옮겨 '보그'(VOGUE)나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등의 잡지 광고와 일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상업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했지만 돌연 32살에 작업 무대를 미술의 세계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내면이 아닌 단지 정확하게 비추는 TV 영상처럼 보이는 것에 집중하며 작업해 나아간다.

그러한 작업 방식으로서 선택한 것이 바로 판화, '실크 스크린(silk screen)' 이었다.

대량생산 되어가던 〈캠벨 수프 캔〉이나 〈코카콜라 병〉 등 유명한 상품들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찍어내기 시작했다. 즉 대량생산된 상품의 그림을 그리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닌 작품 자체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을 상품에 한정시키는 것이 아닌 시선을 돌려 당시 이슈화 되던 인물들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그는 "예술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뉴욕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인 《팩토리》(The Factory)에서 판화, 신발, 영화, 책 등을 만들어내었다.

팩토리라는 이름 역시 공장이 물건들을 대량생산해 나아가는 것처럼

앤디워홀 본인 또한 자신의 작품을 대량생산하는 의미로 '공장'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예술 노동자(art worker; 아트 워커)를 고용해, 실크 스크린 프로세스 프린트, 구두, 영화 등의 작품을 제작 한다. 팩토리는 믹 재거(롤링 스톤즈), 루 리드(벨벳 언더그라운드), 트루먼 커포티(작가), 에디 세즈윅(모델) 등 아티스트가 모이는 장소가 된다.

 

그러나..

1968년 6월 3일 팩토리 스튜디오의 직원 밸러리 솔라나스가 스튜디오에 들어와 워홀을 총으로 세 발 쏘았다. 두 발은 빗나갔지만 세 번째 총알이 그의 양쪽 폐, 지라, 위, 식도를 관통했다. 병원에서 의사들은 그가 죽었다고 선언했으나 그는 그 총격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아가는데, 대표적인 것이 마오쩌둥의 초상화이다.

재해와 신화를 모티브로 한 일련의 작품을 창조하기도 한다.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이어가던 도중,

그의 나이 58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워홀은 자신에 대해 물었을 때,
"나를 알고 싶다면 작품의 표면만 봐 주세요.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며
철저하게 '예술가의 내면'을 없애고 표면적임을 강조하였다.

워홀의 작품 세계는 대부분 ‘미국의 물질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돈, 달러 기호, 식품, 잡화, 구두, 유명인, 신문 스크랩 등을 그렸다. 그에게 이런 주제들은 미국 문화의 가치를 의미했다. 그는 대중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이미지를 이용해 20세기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대중문화’가 가지는 대량소비가 아닌 인류, 진부, 공허함이 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시대의 흐름과 함께하는 것임을..
자본주의가 만연하고, 공허함이 퍼져가던 시대에
똑같은 것, 평범한 것이 하나의 예술 장르로써 특별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의미가 그의 작품 속에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내용 참조 및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C%95%A4%EB%94%94_%EC%9B%8C%ED%99%80 및 인터넷
사진 : 고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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