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살이] 그들에게 역사가 소중한 이유.
폭풍처럼 몰아쳤던 연말이 지나고 어느덧 2018년 새해를 맞았다.
일상의 안녕함을 돌보지 못할 만큼 바쁘게 흘러간 몇 주를 보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프라하를 여행한지 7개월째 접어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고해하건데 나는 최근에 들어서야 프라하가 좋아졌다.
‘멋지다!’ ‘예쁘다!’ ‘매력있다!’ 혹은 ‘저렴하다;;;’ 라고만 생각했지
‘나는 정말 프라하가 좋다.’라고 느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프라하에 와서 호기심과 반쯤의 의무감으로 이곳을 탐구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고풍스런 중세의 도시’ ‘유네스코’ ‘붉은 지붕의 풍경’ 등등의 수식어들은
프라하를 충분히 매력적인 관광지로 만들었다.
그 매력으로 체코 인구의 몇 배에 달하는 관광객들을 이 곳으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나에게는 과도하게 역사를 보존하려는 모습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나는 길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동상들이 있고
무심코 지나는 길, 사람들이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어 슬쩍 훔쳐보면
한 외국인 가이드가 바닥에 표시된 과거의 흔적을 설명하며 열변을 토하고 있다.
다양한 주제의 박물관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심지어 전쟁의 폭격이나 세월의 흐름으로 심각하게 훼손된 건물마저도 그대로 남겨둔다.
왜일까? 그들에게 왜 역사는 그리 중요한 것일까.
‘과거’보다는 ‘미래’가 좀 더 멋들어지고
작은 창문들이 촘촘히 붙어 있는 허름한 오래된 건물보단
통유리로 탁 트인 미래지향적 건물이 훨씬 세련되어 보이고 편할텐데.
나는 출퇴근을 할 때 트램을 주로 이용한다.
집으로 가는 길엔 ‘Florenc’라고 하는 역을 꼭 지나치게 되는데
그 역에는 시외로 가는 버스 터미널이 있어
근교도시로 이동을 사람들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풍경 뒤로 나의 눈을 사로잡는 건물이 있었다.
헤이즐넛 아이스크림 색깔. (달콤한 것이 먹고 싶었나보다…)
네오르네상스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멀끔한 건물이었다.
구글의 도움을 빌렸더니 이 것은 “The City of Prague Museum”이라는
박물관이었다.
이 박물관은 1800년대 후반
프라하 부시장이자 교수였던 Otakar Antonín Zeithammer라는 사람이
이 나라의 소중한 역사를 담고 있는 골동품들이 무분별하게 해외로 수출되자
이를 우려하여 이것들을 한데 모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이 박물관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 프로젝트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이 박물관은
체코의 첫 인류의 등장부터 근 현대까지의 길고 긴 역사 흔적들을 통째로 담게 되었다.
시선을 압도하는 외부만큼이나 내부도 나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옛 도시의 모습을 담은 큰 벽화와 독특한 디자인의 샹들리에.
안정감을 더해주는 둔탁한 대리석 기둥이 즐비해 마치 궁전처럼 웅장했다.
그리고 반가운 금빛 원판.
프라하의 천문시계 아래에 만들어진 농경달력이다.
체코 땅에는 기원전 약 250000년 전부터
호모에렉투스, 이후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한 인류가 거주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 남아있다.
기원전 6세기 경 농경이 시작되었고
이들은 강 주변에 모여 살며 집단 생활을 했다.
이들은 기원전 4세기부터 밀과 보리를 수확하여 이 때 이미 빵을 구워먹고 살았다.
낙농업도 이미 시행되었기 때문에 빵과 우유를 먹으며 영양섭취를 했었단다.
(역시.. 그래서 이 곳 베이킹의 클래스는
남다른 것인가..)
어찌보면 현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체코라는 나라의 시작을 다양한 기준에서 구분 짓지만
많은 문헌과 역사서적에서와 같이 이곳에서도
옛 체코. 보헤미아의 시작은 9세기 정도로
보았다.
프라하성, 비셰흐라드 두 개의 성채에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성당과 왕궁들도 하나 둘씩 생겨났다.
보헤미아 왕국은 무섭게 성장했다.
카를 4세라는 황제의 치세 기간동안 이 나라는 최고의 번영기를 맞이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 국가들의 침략으로 이 영광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전시된 물건들의 종교적인 색채가 짙어진다.
중세. 즉 종교의 시대로 도래한 보헤미아는 신구교간의 대립으로 큰 진통을 겪지만
결국 1600년대 구교였던 오스트리아의 속국으로 전락하며 이 대립의 종막을 고하게 된다.
역시 카톨릭인가보다.
성화와 성상 등. 선교활동의 교구가 되었던 물건들이 무수히 많았다.
1800년대 유럽은 계몽주의 사상으로 인해 사람들의 이성이 깨어나면서
평등한 객체의 인간을 사회가 정해놓은 계급으로 구분 짓는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변혁을 일으키려는 혁명들이 유행처럼 번진다.
오스트리아의 지배 하에 있었던 보헤미아는
같은 역사와 민족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자의식이 깨어나며
이것이 독립운동으로 꽃피워진다.
이 박물관의 최고의 걸작은 1800년대 프라하 도시의 모습의 모형이었다.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흘러가는 블타바강을 기준으로 나뉘어지는 프라하성역과 구시가지의 모습.
붉은 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도시의 모습을 실물로 보는 것과 다름없었다.
어쩜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대단할 뿐이었다.
역사와 함께 과거의 인물에 대한 애정이 강한 체코인지라
사람들에 대한 기록도 놓치지 않았다.
운동선수, 영화배우, 기타리스트등 위인들의
판지 모형은 신선했다.
박물관의 전체적인 평은 볼거리가 충분했다는 것이었다.
희귀한 물건과 유물들도 많았고
투어를 하면서 쓸 자료도 수집할 수 있어서
이 곳에서 찍은 사진들로 사진첩을 빼곡히 채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 곳에서 얻은 것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관람을 모두 마칠 때쯤에서야
나는 이 박물관의 취지가 적힌 긴 글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내 마음에 큰 감격을 주었다.
“과거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우리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 짓지만
우리는 모두 결국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과거와 현재뿐이기에
이에 기반해서 미래를 설계할 수 밖에 없고
과거를 반추하지 않으면 이정표 없는 길을 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 글귀는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의 삶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1989년 독립 이후 30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던 체코라는 나라가
건강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에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나는 또 한 번 프라하에 반했다.
동화 속 세상을 재현한 것 같은 심미적 아름다움으로 시각을 사로잡았던 프라하가
이제는 나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빼앗겨버린
사랑하는 도시가 되었다.
일찍부터 어둠이 휘감던 길고 긴 프라하의 밤도 다시 조금씩 짧아진다.
또 이렇게 한 계절이 흘러가고 이 순간은 다시 역사가 될 것이다.
그 역사는 다시 소중하게 다루어질 인생의 한 조각이 될 것이고
나는 내가 반해버린 이 도시처럼
그 조각조각들을 사랑하며 귀중한 이 순간을 살고 싶다.
유로자전거나라 체코지점 송지영 가이드.
* 박물관정보
위치 : 지하철 B,C선 또는 트램 Florenc역 도보 2분
시간 : 09:00-18:00 (월요일 휴무)
요금 : 성인 150kc, 학생 60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