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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현지 가이드들이 전하는 생생한 여행 정보

제목
화이트 벌스데이 in 그리스(1)
작성자 허수빈 가이드 등록일 2017-01-19
조회수 2,437

 

 

 


 

 

눈 덮인 메테오라.

노래하는 밥딜런(Bob Dylan). 왠지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네.

 

 여행을 떠난다. 몇 달 전, 길게는 1년 전부터 숙소 예약, 티켓 구매 등을 하며 준비한다. 준비하는 과정 중에 우리의 마음은 이미 설레고 벅차오른다. 학수고대했던 여행을 떠나는 당일. 편한 신발을 신고 나선 발걸음은 괜히 평소보다 가볍고, 햇살은 괜스레 더 밝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지루하고 틀에 박힌 일상을 잊는다.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인 직장상사와 과음한 다음날 변기 붙잡고 울게 한 전 여자친구 쯤은 양손 가득 잡은 케리어를 더욱 가볍게 해줄 뿐이다. 여행하며 일어날 예측불허 사고도, 들어왔다 하면 나가는 쥐꼬리 만한 월급도 우리라는 '보통의 존재' '특별한 여행'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으레 짐작하 듯, 여행은 위험하다. 다칠 수도 있으며, 금전적으로 부담도 된다. 그래서 미리 여행지를 공부하고 온라인 예약을 하며 준비를 하지만, 머피의 법칙처럼 다가 올 예측불허의 사고는 어쩔 수 없이 우릴 작게 만들다. 얼마 전, 서정적이고 깊이 있는 대중 인기가요로 노벨상을 받은 밥 딜런은 왠지 불안한 우리에게 괜찮다며 토닥이듯 말한다. 딜런의 노래 'Don't think twice, it alright' 한 구절이다.

 

 "두 번 생각하지 말아요. 모두 잘 될 거예요(Don't Think Twice, It's Alright)"

 

 가방 통째로 소매치기를 당한 기억도, 이방인으로 느끼는 박탈감도 모두 보통의 우리가 여행하며 겪는 일상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추억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나간 여행의 사건사고는 보다 행복한 기억이 된다.

 

 보통의 존재 중 하나인 나에게도, 그리스를 20년 살아도 보기 힘든, 눈 덮인 메테오라와 함께 행복한 기억을 하나 남겼다. 물론 순탄하지 않은 사고였다. 이는 얼마 남지 않은 나의 20대의 생일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점심식사 장소인 아라호바. 악천후


 

나는 여행사에서 일한다. 그리스의 고대 유적지 델피와 멋진 수도원들이 절벽에 걸친 듯한 메테오라를 가는 투어를 진행한다. 이 투어는 1박 2일로 구성되는 데, 공교롭게도 출발하는 1월 16일이 내 생일이었다. 그리스에서 맞는 2번째 생일이다. 생일날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 휴대폰 날씨 어플을 보니 그리스 전역에 눈 소식이 많다. 그렇게 "그리스니까, 뭐 조금 춥겠지"하며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했다. 건방지게도,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다.

 

 작은 승용차 안에서 대학생인 두 딸을 둔 50대 부부와 오손도손 진행했다. 두 분은 유럽은 물론이거니와 중남미 대륙도 여행하신 겸손한 프로여행자였다. 곰을 만나면 죽은 척해야 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21년 전에, 휴대폰도 없이 곰이 출몰한다는 미국 야산에 조난당한 경험도 있다 했다. 북유럽과 독일을 여행하던 당시엔, 차량을 렌트해 여행하던 도중, 시내에서 예민한 독일인과 교통사고(큰 사고는 아닌)를 일으킨 찬란한 경력까지 있는 두 분. 두 분의 경험이 많이 부족한 어린 나에게 든든한 힘이 됐다. 예를 들어, 어머님은 휴게소를 들릴 때마다 두 손 가득 과자를 사 오셨는데, 장시간 운전하는 나를 위해 졸지 말라고 소중한 생일선물 건네 듯이 앞좌석으로 살포시 넘겨줬다.

 

 이런 훈훈한 출발과 함께, 역설적으로 날씨는 춥고 흐렸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점심때 도착 한 아라호바는 이미 차후의 상황을 미리 보여주듯이 안개로 뒤 덮인 상황. 불안감을 안고 시간에 맞춰 투어를 진행했다. 첫날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해가 질 무렵에 숙소로 출발했다. 숙소까지 가는 길은 차로 2시간 30분(더 걸릴 때가 많다)이 걸린다. 가는 길엔 전쟁 중에 간이 막사로 지은 것 같은 휴게소가 2군데 있다. 멀미 없는 사람도 귀미테를 찾게 만드는 꼬불꼬불한 산을 두 번 넘는다. 그런 상황에, 당장 10m 앞이 보이지 않게 된 안개 덮인 그리스의 산과 하늘은 날 비웃고 있었다.

 

 


 

 

난 운전병이었다. '눈알못' 부산 운전병이었다

 

 안개만 자욱하면 다행이었다.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쌓인' 눈이 운전대를 잡은 내 손을 더욱더 긴장하게 했다. 나는 군 시절 운전병으로 지냈다. 그래서 내가 운전병이었다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 대부분이 내 운전실력을 맹신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부산에서 자라, 부산에서 운전병으로 군 복무를 했다. 즉, 단 한 번도 눈길 운전을 해보지 못했다는 거다. 요즘 특정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O알못(O을 잘 알지 못함)'이라고 한단다. 나는 토종 부산 사나이, 눈알못(눈을 잘 알지 못함)이다.

 

 숙소로 출발한 지 약 30분 정도 흘렀을까. 갑자기 내리막 길도 아닌 오르막 길에서 차량이 미끄러졌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되려 더 미끌리는 바람에 크게 놀랐다. 어찌 됐든 천천히 가고 있었던 터라, 차는 다행히도 갓 길에 안전하게 세웠다. 그렇게 한겨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인중을 닦으며 긴장한 채로 차를 나갔다. 나가서 보니, 눈이 쌓이긴 했지만 챙겨간 체인을 바퀴에 감으면 그럭저럭 될 거 같았다. 운전병으로서의 진면목을 두 분께 보여줄 때다. 

 

 당당히 체인을 달았다. 침착하게 차 트렁크를 열어서 체인 박스를 열고, 형형색색의 기다란 자동차 바퀴 체인을 사용법에 따라 신중히 감았다.

 

 어디에? 뒷바퀴에다가.

 

 앞바퀴로 방향을 바꾸는 전륜 구동 차량에 말이다. 즉 완전히 반대로 바퀴 체인을 감았다. 설상가상으로 쪼그려 앉아 체인 감는 내 옆을 지나가는 여러 대의 차량들은 팬티라인이 훤히 보이는 내 허리에다가 인정사정없이 물을 튀겨 넣고 지나갔다. 그래도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나에게 그 정도 시련은, 워터파크 물놀이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여느 차들처럼 지나가지 않고 경찰차 한 대가 내 옆으로 선다. 당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경황이 없던 터라, 아무런 악의가 없는 그리스 경찰관을 쏘아보며 '날 체포할 이유는 없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으레 떳떳하려고 했다. 물론 나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비자도 있고, 국제면허증도 있다. 근데 왜 속으로 겁이 난 건지. 그렇게 미스터 빈을 닮은 그리스 경찰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스 쾌남이 보여주는 '남자가 체인 거는 법'.


"반대, 반대로. 너 잘못. 안돼."


 그리스 경찰관이 한 말이다. 이렇게 짧은 영어를 하며 체인을 풀기 시작했다. 전륜구동인 차량의 뒷바퀴에 체인을 감는 나를 보고 안쓰러워 내린 것이다. 이내 나는 상황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그리스 경찰관을 도왔다. 그는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물론 영어를 잘 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같았다.  그는 별 말을 크게 하지 않고 바로 행동에 옮겼다. 그리스의 진정한 쾌남이다. 체인을 풀고, 상세히 감는 법을 알려줬다. 그리고 친절하게 차가 잘 출발하는지 봐주었다. 그는 여권을 보여 달라거나, 면허증을 제시하라는 일체의 신분 증명 없이 자신의 조국의 땅에서 가녀린 외국인들을 도왔다. 조건 없는 그의 친절에 우리는 한국의 김치라도 줘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감동했고 고마웠다.

 

 그는 우리 뒤를 계속 좇아왔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혹여나 우리가 눈 길에 사고가 나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따라온다는 것을. 차에 타고 계셨던 두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호위무사'같았다. 어느새, 첫 번째 산에서 내려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눈은 어느 정도 녹아 있었고, 우리는 체인을 다시 풀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스의 쾌남은 경찰차에서 내려 체인 푸는 것을 도와줬다. 물론, 아까와 마찬가지로 무뚝뚝하게. 그렇게 그는 체인을 트렁크에 넣는 것까지 도와주고 돌아갔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 한 장만 찍자고 했다. 우리는 그 사진을 통해서 그리스 경찰청에다가 너무나 감사했다고 글이라도 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쾌남의 면모를 어김없이 보여주며

 

 "노 땡큐."

 

 한 마디 던지고 사라졌다. 그렇게 그의 차디찬 한 마디는 눈 덮인 그리스를 여행하는 우리의 마음을 녹였다. 그는 이후에도 경찰차를 타고 또 다른 이들을 도와줬을 것이다. 우리에게 보여준 쾌남의 모습으로.

 

 감사했다. 그리스의 매력은 이런 예상치 못한 점에서 오는 게 아닐 가하고 새삼스레 느꼈다. 마치 예상치 못한 여행의 묘미처럼 말이다. 

 

 이대로 따뜻하게 녹은 마음으로 숙소까지 갔다면 좋으련만. 

남은 우리의 여행길은 순탄치 않았다. 

 

 아- 쾌남 번호라도 따 둘걸.





https://brunch.co.kr/@heogoon

 

 

 

댓글수:5개

  • 이준수 2017.01.28
    그날 같이 차 타고 잇던 부부입니다.수빈가이드의 책에 대한 지식과 인문학적 지식에 조금 놀라고 글을 쓴다기에 어떨까 했었는데 말하는것
    이상으로 글을 잘쓰시네요.잊지못할 그리스에서의 1박2일 수빈씨가 많이 고생했었고 수빈씨 말대로 고생은 사라지고 추억만 남습니다.
    고맙습니다.제대로 된 빵이 없어 생일 축하케익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어요 ㅠㅠ
    건강히 잘지내시길,,,


  • 허수빈 2017.01.22
    허당이라는 별명이 어느새 부턴가 싫지 않아졌습니다.만, 고쳐야 하겠지요! 나아지려고 노력 중이어요..(안타깝게도 쾌남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 greeksungsu 2017.01.21
    그날 날씨 걱정때문에 저녁에 문자 보냈을때, 자랑스럽게 수빈가이드가 뒷바퀴에 체인을 채운 사진을 보내줬었죠. 그 사진을 보고 왜 뒷바퀴에 체인을 채웠을까? 좀 의아해하기는 했었어요. 그날 차량이 BMW라서 혹시 후륜인가 했는데....역시 수빈가이드의 허당끼가 유감없이 발휘되었군요. 그래도 그리스경찰 덕분에 잘 조치해서 다행입니다. 허당 수빈 가이드님 고생많으셨어요. ^^
  • 황혜지 2017.01.20
    허수빈가이드의 글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글을 읽는 내내
    눈내리던 그때 그날 함께 했던 것 처럼 숨죽이며 손을 꼭 쥐고 읽었네요!
    \'지나간 여행의 사건사고는 모두 추억이 된다\' 이말 참 좋으네요.
    지난 여행때 몇가지 일들이 스쳐지나가면서 웃음이 나요.
    그때 그일들이 없으면, 얼마나 밋밋한 여행이였을까! 라는 생각도 들구요.
    아!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 그리고, 체인 감은 그리스 쾌남의 번호는 제게 넘기시죠!_<
  • 김경진 2017.01.19
    1월 16일이 수빈가이드님 생일이었군요.조금 지나긴 했지만 생일 축하해요 !!
    글 읽다보니 예전에 그리스 갔을때 숙소 못찾으니까 입구까지 데려다 주시던 아저씨가 급 생각 나네요
    그리스 여행가면 가끔 무뚝뚝한 듯 친절하게 도와주는 현지인들도 참 매력있는 것 같아요.
    글 읽다보니 수빈가이드님 실제 이야기라는 것도 잊고 재미있게 읽게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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