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것.
바다를 등지고 하얀 담벽 사이를 지나는.
그리스의 아름다운 섬들은 우리의 상상 속에 여름의 낭만으로 기억 된다.
하지만 그런 섬들을 겨울에 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몇 시 비행기 타세요?"
그리스의 공항은 우리나라처럼 화려하지도, 편리하지도 않다.
하물며 탑승객처럼 어슬렁 거리는 고양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옆에 앉아서 울어 댄다.
겨울이면 좀비 한 마리 튀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스산함으로 가득 찬 공항을 볼 수 있다.
짧은 공포감을 느끼고 공항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10분 정도 택시를 타고 들어온 곳은 겨울의 미코노스다.

미코노스 골목. 할배, 고양이 똥 위에 앉지 마요.
명불허전이다.
짠 바닷바람이 얼굴을 후려 쳐도,
온 섬이 고양이 똥으로 범벅이 되어 있어도 그리스 섬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쁜 미코노스의 모습은 어느새 내 마음을 붕 뜨게 했다.
겨울엔 사람도 없어서 환하게 잘 보이는 골목이 알록달록 설레인다.
하얀 도화지 같은 섬. 그렇게 2시간 정도 걸었다.
장사는 안해도 알록달록
길게 걸었으니 어디 들어가서 초코 머핀 하나에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이 먹고 싶었다.
그리고 한시간쯤 더 걷다가 숙소 가기 전에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면 딱 좋았을 것이다.
작은 바람이었는데, 겨울의 미코노스를 너무 과소평가 했나보다.
골목마다 형형색색의 대문들이 왜 이쁜지 이제야 그 이유가 생각 났다.
'그래. 나 버스도 못 탔지.
겨울이라 없어서.'
모든 가게(음식, 커피, 악세사리)들이 대문을 철저히 걸어 잠궈 준 덕택에
형형색색의 골목 풍경이 연출 됐던 것.
그렇게 굶주린 배를 움켜지고 1시간을 더 걸으니,
바다 속에 들어가 물고기 사냥을 하고 싶어 졌다.
풍력 방앗간. 안에 누구 없수?
바닷가로 나와서 해안가를 걸었다. 수렵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가다보니 미코노스에서 유명한 풍차가 옆으로 있고,
저 멀리 불을 밝힌 한 식당이 보였다.
13번째로 전화를 건 식당으로부터 닫았다는 통보를 받고 '한끼줍쇼'할 상황이었다.
봉 '모래' 골래 파스타
배를 채울 수준의 밥을 먹었다.
겨울의 미코노스의 가장 큰 장점은 물가가 3분의1 수준으로 저렴하다는 것.
비수기라 가게 주인장이 졸면서 만든 것 같은
조개가 씹히는지 모래가 씹히는지 모를 파스타 한 접시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갔다.
뜨뜻한 돼지국밥 한 그릇 생각나는 밤이겠거니.
조식 신청 꼭 하세요(단호)
바람이 많이 불지만 그리스의 겨울 날씨는 대체적으로 따뜻하다.
간 밤 반신욕을 하고 모래로 가득찬 배를 두드리며 푹 잤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조식을 미리 신청한 과거의 내 자신에게 정말 고마웠다.
야무지게 크롸상에 버터 발라 먹고 아테네로 돌이간다.
세계대전 때 사용했을 법한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에 이 글을 쓴다.
살아서 아테네로 가기를.
겨울의 미코노스 재밌었다.